Skip to content
devkoriel
Go back

10년동안 개발자로 일한 이야기 #3

13 min read Edit on GitHub

1편 보러가기 | 2편 보러가기

당근마켓에 들어가니 뭔가 새로웠다. 따뜻했다. ~해요 라는 어투를 쓰며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크래프톤에선 진짜 DevOps가 뭔지 배웠다면 당근마켓에선 문화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당근마켓으로 이직한 이유도 확실했다.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에 가고싶었다. 게임 회사는 아무래도 프로젝트가 끝나면 와장창 다 무너지니 업무의 연속성을 지키기 어려웠다. 는 핑계기도 하고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연봉을 더 올리고 싶었다. 실제로 크래프톤에서의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했고.

주로 HAProxy를 다루며 당근마켓의 트래픽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 펍지에서 워낙 큰 규모의 트래픽을 살얼음판 걸으며 다루다보니 어느정도 쉽게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뿐 늘 챌린지는 존재했다. 수차례 실수를 해가며 늘 배웠다. 새로운 건 어디에나 있으니까. 당근에서의 내 삶은 그 당시 내 황금기였다. 부서를 막론하고 친하게 지낸 동료도 매우 많았으며 동료의 도움으로 AWS Summit에서 발표를 해보기도 했다. 뭔가 유명한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은 이런건가 싶었다. 너무 즐거웠다. 워케이션이라는 것도 가보고, AWS re:Invent도 가보고! 국제 연애도 해봤다. 거기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서. 이벤트가 많다는 건 그때의 기억이 길기도 하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황금기도 잠시, 진짜 성장을 위한 시간이 다가왔다.

두나무라는 회사를 알고 있었다. 돈 많이 주는 코인 회사. 거래소 회사? 잘 몰랐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진짜 비즈니스를 알고 싶으면 금융권에 가보라는 조언을 들어왔다. 그땐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뭔가 당근에서의 내 역할은 지지부진했고 회사의 성장도 더뎠다. 그냥 새로운 회사에 가서 연봉도 더 받고 더 치열하게 일하고 싶었다.

무턱대고 링크드인에서 이력서를 뽑아 두나무에 지원했다. 블라인드에서 말로만 듣던 그 회사에 내가 지원을 하다니. 될줄 몰랐다. 다만, 그때도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뭔가 더 배우고 싶었고 더 치열하게 일하고 싶었다. 전통적인 금융권인 증권사, 은행은 가기 싫으니 뉴-금융권인 두나무라면 금융권에 가보라는 조언도 듣는 격이고 연봉도 더 올릴 수 있었다. 이전과 같이 내 진심을 전하며 1-2시간 정도 면접관들 앞에서 내 지식을 더해서 열심히 질문에 답했고 합격했다. 이때도 가혜님이 도와주셨다. 그는 나에게 신이었다. 주는 조언들이 모조히 먹혀들어갔으니.

두나무에 들어가면서는 의외로 연봉을 깎았다. 이게 무슨 소리냐. 기본급을 깎았다. 15%나. 초과 근무 수당과 인센이 그를 커버쳐줄 것이라는 말을 믿고 가열차게 입사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모든 일을 그르치기 전까지는.

자아가 비대했던 것 같다. 마치 영화에서 보던 딜을 성사시키는, 자신감으로 나를 어필하고 원하는 걸 얻어내는 그림을 기대했었다. 그건 내 착각이었고 미성숙함이었다. 회사는 나를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고, 가지고 있던 권한들 조차 뺏기기 시작했다. 너무나 괴로웠다. 온갖 듣기 싫은 말들을 들어가며 일할 땐 정말 죽고싶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참았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란걸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참고 또 참았다. 무슨 일이었는지 자세히 말하면 어떤 사람은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힘들 일이었다. 어느날 우울하게 잠만 자고 일어난 날, 이미 퇴사한 친하게 지내던 형이랑 잡았던 약속을 기어나가서 만났다. SK양평주유소에 딸린 맥도날드였다.

이러한 사연이 있다며 정말 죽을듯이 힘들다고 했다. 그때 그 형이 나한테 이랬다.

“너는 예전에 힘들어본적이 없어?”

없다. 뻔한 말이지만 머리를 망치로 치는듯한 말이었다. 내가 왜 이런걸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 그냥 버티고 다니면 되는걸. 그냥 주어진 한계속에서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내 소임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계속 다녔다.

그러다보니 나아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마실 아샷추 한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고, 사무실에서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을 누르며 회사를 다녔다. 그때의 나는 개발자가 아니라 회사원이었다. 개발자도 회사원이지만, 뭐랄까, 뭔가 흑화했었다. 하루하루 버티면서 사는게 이런건가, 그래서 어른들이 사는게 다 힘들다고 한걸까라며 담배만 퍽퍽 피워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그 하루가 너무나 길고 지루하게도 느껴졌다.

그때 마침 또 큰 이별을 하게 되었고 난 그냥 정신을 조금 놓고 있었다. 사람들의 온기를 소중히 여기며 잠시 비대했던 나의 자아도 성찰해보고, 성장한다는게 이런건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름 만족스러운 날들도 제법 있었다.

그렇게 난 매우 단단해질, 단단해진 2년의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에겐 별일 아닌 것으로 매우 힘들어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상대적인것이기에.

그렇게 그냥, 이렇게 이 자리에 와있다. 언젠간 Go Global 하겠다며 설쳐대던 내 목표도 조금은 이뤘다. 코인으로 월급받으면서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고있다. 별건없다. 첫 회사 럭스로보때에 비하면 10배는 더 번다. 어느 정도 먹고살만하면 그게 막 엄청 중요한거 같진 않다. 물론 중요하지. 무슨 뜻인지 알아줬음 좋겠다.

어느덧 부모님은 칠순을 바라보고 계시고 주변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나이 서른셋에 뭔가 공장 초기화가 된 느낌이다. 모은 돈도 얼마 없다. 누구는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3억을 모아 부모님 집도 지어드리는데, 나는 뭘하고 있나. 현타가 왔다. 이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냥 되돌아보고 싶었다. 내 20대를, 30대를. 이야기하고싶었다. 내 얘기를.

솔직히 말하면, 난 힘들어본적이 별로 없다. 부모님은 나름대로 자수성가하셔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20대때의 대부분의 재테크는 아버지가 도맡아 해주셨다. 그걸 믿고 삐댔다. 돈도 흥청망청 썼다. 정말 철딱서니가 없지. 서른셋이 되던 이듬해 첫 자락에서, 그냥 멍하니 서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나 뭔가 잘못 살고 있는건가? 이러다 망하는거 아니야?

암만 부모님의 서포트가 있을지라도 내가 너무 한심해보였다. 집에선 청소를 도와주시는 분을 모셨으며 뭔가 문제가 생기면 다 돈으로 치덕치덕 발라 해결해왔다. 그정도 돈도 없으면서.

암튼 정신차렸다. 월세를 제외한 나머지 고정비는 대부분 줄였다. 이제 내 힘으로 뭔갈 쌓아봐야지. 유투브에서 자산 증식이니 뭐니 아버지가 다 해줄거라는 생각에 손 놓고 있었던 것들도 다 내힘으로 다시 다 시작할거다. 그냥 남의 도움은 이제 없다 치고.

그래도 이제라도 깨달은게 어디야, 위로를 삼아보며 내일을 준비한다.

그래도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내가 가꾸어갈 내 삶이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갈지. 조만간 캐나다로 이주를 가고싶다. 부모님을 모시고 갈 수 있으면 그렇게.

2편에서 언급했던 럭스로보에서의 고문님이 나한테 말한적이 있다.

“지금의 이 순간이, 이 결정이 10년 후를 보면 얼마나 중요한 결정이었는지 지금은 모를거야.”

몰랐다. 어릴적 꿈꾸던 직업으로 내가 지금까지 밥을 벌어 먹고 살줄.

23살의 나는 몰랐다. 내가 33살이 될줄.

올해로 대략 10년차다.

Not Powered by AI at all


Edit on GitHub
Share this post on:

Previous Post
10년동안 개발자로 일한 이야기 #2
Next Post
달러로 월급 어떻게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