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자신감이 붙어서 공대 동아리에 지원했다. 사발통문이라는 유서 깊은 동아리였는데, 원래 로봇 제작 동아리였단다. 그땐 사실상 드론 제작 동아리였다. 쿼드콥터라고 지금은 드론인 그것이 아주 핫할때였다. 앱 개발을 마무리하고 그때부턴 드론을 만들어보는 일에 매달렸다. 엄카를 잔뜩 써가면서 방학때마다 여자친구도 안봐가며 하비킹에서 부품을 왕창 사다가 날리고 부수고, 날리고 부수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그때 아마 처음으로 블로그를 제대로 해본 것 같다. Code snippet 삽입 기능도 없는 네이버 블로그에 이거해봤습니다. 저거 해봤습니다. 이렇게 해보니 이런 것 같네요. 글을 꽤 많이 썼다. 100개 좀 넘었었다. 뭔가 좀 제대로 한 내 작품인듯한 느낌.
그러면서 조금 더 본격적으로 개발을 해보고싶어서, 사회에 계신 분들과 협업하기 위해서 모두의 연구소라는 곳에 메일을 보냈다. 마침 드론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었다. 네이버에 계시다 온 분, 현업에 계신 개발자분들이 모여서 드론을 개발하고 계셨다. 그렇게 학교 동아리와 모두의 연구소 연구를 병행해가면서 최종적으로 항공대에서 주최하는 대회에도 참가했고 그게 큰 결실이었다.
시간이 흐르다, 공대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형 회사에서 일해볼 생각 없어요?”
엥 내가 무슨 회사야. 난 창업할거야. 회사는 멋없는 애들이나 그냥 들어가서 일하는 그런데 아니야?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기로 했다. 후배가 잠깐 일을 도와주는 회사의 CTO가 같은 연구실 박사 중인데 나를 보고싶어하신단다. 뭐 아마도 내 블로그를 보고 좋게 생각해주셨나보다. 얘기나 들어보자, 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여름 방학의 푸릇한 냄새가 나는 연대 남문의 운동장. 금요일이었다. 그곳을 걸어서 공대 건물에서 승배형을 만났다. 요즘 보기 드물게 하드웨어 다루는 친구가 있어서 후배한테 추천 좀 해달라고 물어보고 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회사에서 일한다는게 뭔가 좀 무서웠다. 어른들의 일 같았다. 그래서 몇주만 해본다고 했다.
2017년 4월. 여의도 63빌딩 4층. 내 첫 출근길이었다. 어디서 보고 들은 것도 있고, 어머니께서 멋지게 꾸며주신 덕에 나름 공대 찐따가 코트도 입고 63빌딩엘 갔다. 뭐가 뭔지. 동아리나 회사나 나에겐 구분이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코너를 돌아서 들어간 한 사무실에서, 지금 생각하면 참 웃는 모습이 다들 좋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살이 쪘는지, 항상 말랐던 나였는데, 듬직하다며 다들 날 칭찬해주며 맞아주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내 직장 생활이.
너무 재밌었다. 럭스로보는 교육용 로봇 완구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는 회사였는데, 한때는 바이럴도 타고 인기가 제법 있었던 핫한 스타트업이었다. 날아갈 것 같았지. 그런 회사에서 내가 개발자로 일한다니! 광운대 로봇공학과 팸이 똘똘 뭉쳐서 창업한 회사였는데 다들 똑똑했다. 언변이 뛰어난 대표형, 정말 착하면서도 똑똑한 CTO 승배형, 한 식구처럼 대해주었던 모든 팀원들. 일주일에 2번씩은 밤을 샜다. 회사에서 일 안할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조차 잊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재밌었거든. 연봉도 꽤 준다잔아! 그때 당시에 3,600이었나 그랬을거다. 돈 제법 번다고 생각했지.
난 그때 하루에 16시간 일했다. 버스타고 회사에 가는 길, 회사 사무실, 사무실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밥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일만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불안 장애의 반작용 아닌가도 싶다. 뭐 눈에 보이는 불안한 건 없었는데, 뭔가 있었겠지. 20대니까. 그렇게 그냥 4년이 곧장 흘렀다. 난 그냥 직장인이었다. 뭔가 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짠! 하고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어있었다. 아무튼, 눈코뜰새 없이 일만 한 그 시간이 지금은 조금 아깝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큰 도움이 된것도 사실이다. C++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하드웨어 다루는 솜씨도 좋아졌다. 그땐 소프트웨어 붐이었기 때문에 하드웨어를 다루려는 사람도 없었고 다루는 사람도 3D 직종 취급 당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학교도 졸업했다. 어느덧 학교는 후순위, 회사는 1순위였다. 처음엔 재밌었지만 언젠간 사람들과 다투기도 하면서 힘들기도 했다. 이별도 했다. 그 나이때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지금보면 왜 어른들이 참 좋은 나이다 할만한지 알만한, 그런 빛나는 시기이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냥 모든게 싫을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난 사회인이 되었다.
DevOps 라는게 막 유행할때다. 뭔지도 몰랐다. 처음엔 무슨 문화인줄 알았다. 일부 맞기도 하다. 그땐 문화인 것이 전부인 줄 알고, 회사를 돌아다니며 설파를 하고다녔다. 이런게 있는데, 우리 이렇게 일해야한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같잖지도 않지. 페북에 보면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을 퍼나르고, 쓸모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들을 회사에서 해보면서 자랑도 하고, 뭐 소위 꺼드럭도 대보고. 그러면서 커리어를 집중시키겠다는 핑계로 나는 DevOps Engineer가 되겠다며 다음 회사로 이직을 했다.
엔젤스윙. 내 두번째 회사였다. 조지아텍과 서울대생이 창업한 전도유망한 회사. 토목, 건설 현장을 누비며 드론으로 부피를 재고 계획을 세워주는 소프트웨어를 파는 회사였다. 여기서의 목표는 분명했다. DevOps Engineer로서의 경력을 확실히 하겠다. 어차피 처음부터 큰 회사는 가지도 못했다. 별 생각 없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그냥 내가 드론을 열심히 개발해봤고, DevOps를 해볼 수 있는 회사니 진심으로 서사를 풀어 지원했고 합격해서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DevOps가 뭔지 몰랐다. 엄청 똑똑한 형이 나에게 DevOps가 뭐냐고 묻는 말에 각 개발팀들을 지휘하는 역할같은 거라고 똥소리를 했으니. 그땐 정말 그런건줄 알았다. 아이 쪽팔려.
그렇게 또다시 작은 스타트업에서 몸소 부딪혀가며 DevOps를 배웠다. 컨테이너가 뭔지, 배포는 어떻게 하는건지. 로그는 어떻게 쌓고 분석하는건지. 스타트업이니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실력이. 남들 다 가는 개발자 컨퍼런스도 가보고 부모님 세대들이 읽던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기고도 해보고 (이때가 아닐수도 있지만 암튼 했다). 그 규모의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나름 다 해보면 쭉쭉 학습하고 배운 것 같다. 그러다가 나도 한번 큰 회사 멋지게 가보자하며 PUBG에 지원했다. 더이상 그 회사에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내가 하고싶다고 회사돈을 버려가며 하고싶은걸 할수도 없었거든.
PUBG에 지원할때도 진심으로 지원했다. 나 스타트업에서만 일해봤는데, 이제 더이상 해볼 수 있는게 없고 큰 트래픽 다뤄보고싶다며 지원했다. 와 면접이 무지하게 떨리더만. 나름 배워본 지식들을 활용해서 벌벌 떨면서 화상으로 면접을 봤고 결국 합격했다. 그때가 코시국이라 모든게 비대면이었다. 첫출근도 비대면으로 했다. 그렇게 2년간 3번째 직장은 비대면으로 다녔다. 물론 종종 사무실에 나갔지만. 거기서 병역 문제도 해결했다.
엄청 좋았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즐겨하던 그 배그를 만드는 회사에서 내가 일하다니. 멋지잔아. 꺼드럭거리기도 좋잔아 (지금은 의미없다는 걸 안다). 뉴스테이트라는 신규 프로젝트를 하는 팀에 들어가게됐다. 면접 당시부터 XTRM이라는 코드명이 있었지만 게임 회사 특성상 비밀에 부쳐졌다. 무슨 프로젝트를 할지 대충만 알고 입사했다. 모바일 게임이라는 것만 알았다. 펍지가 뉴스테이트라는 이름을 달고 독자적으로 배그 모바일을 내는 프로젝트였다. 어우 엄청나게 배울 것이 많았다. 그전엔 진짜 대규모 트래픽을 받아본적이 없다. 대기업도 처음이고. 딱 2년 다녔다. 프로젝트가 시작할때부터 끝날때까지. 나올때쯤엔 메타버스 머시기를 한다던데.. 하면서 나왔다. 이때 난, 대규모 트래픽을 다뤄본 개발자가 되어있었다.
그땐 자고 일어나면 연봉이 오르는, 개발자 구인난인 미친 시대였다. 크래프톤이 그 첫주자였다. 진짜 자고 일어나니 연봉이 2000이 올라있었다. 연봉 7000의 남자가 되었다. 어깨에 힘 좀 들어가는.
그러다가 이전부터 알고지내던 서치펌 컨설턴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근마켓 가보지 않으실래요?”
아마 그 연락을 받고서, 마음은 이미 당근마켓이었던 것 같다. 가혜님의 가이드에 따라 면접도 열심히 준비하고 착실히 진행해가다보니 합격했다. 그때 알았다. 척하면 떨어진다는 것을. 다른 회사들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내 이야기를 하고, 준비한 것들을 잘 이야기하고, 떨리면 떨린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 이후는 그 회사의 몫이다. 후보자가 회사와 잘 맞다고 느끼면 채용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일종의 개발자로서의 2막을 당근마켓에서 시작하게됐다. 이때 연봉을 얼마 올렸을까. 75% 올렸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후속으로 계속 쓰겠습니다. 글쓰는 재주가 없어서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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