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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개발자로 일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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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대략 10년차다.

난 어릴적부터 유독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대충 아버지가 1세대 개발자로 일하시며 나를 키워오신 덕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때부터 내용도 모르고 이해도 할 수 없는 멋져보이는 책을 사서 집에 두곤 했다. 그냥 멋져보여서. 거실에 있는 우리 남매 공용 PC엔 CIA 로고가 새겨진 바탕화면을 해두기도 했다. 영화에서 본 CIA는 컴퓨터로 이상하고 멋진 일들을 해내는 요원들이 일하는 정부 기관이었으니까. 지금와서 보니 그중 하나가 열혈 C 프로그래밍 책이었다. 그 보잘것 없는 허세가 나름 도움이 된건 큰 반전이다.

중학교때까지 공부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었다. 첫 자식인 누나를 매우 빡세게 키우시려다 고생하신 탓인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그냥 내버려두며 키웠다 (7살 차이다). 하고싶은거 하면서 그냥 착하게만 살라고. 뭐 가끔 그래도 그렇게 공부 안하면 나중에 뭐 하려고 그러니, 잔소리를 하시긴 했다. 암튼, 그때까진 그냥 컴퓨터같은거 좋아하고 라디오 뜯어보고 자전거 타고 놀러다니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찐따 키드였다.

중학교 2학년때인가, 그땐 다들 외고나 특목고, 자사고에 못가서 미친 세상이었다. 뭐 딱히 동기는 없었지만 다들 멋져보이는 그런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서 학원에서도 자랑을 해대니, 나도 나름 위기감을 느꼈는지 중2때부턴 나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어느 정도 받쳐준덕에 그래도 반에서 2, 3등은 하는 조용하고 공부 좀 하는 아이가 됐다. 중3이 되니 슬슬 어느 고등학교를 가야할지 결정할 시기가 되었다. 크게 2가지밖에 없었다. 동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든, 시험쳐서 다른 곳에 외고나 자사고, 특목고를 가든. 그때 주변에 정보 올림피아드를 좋은 성적으로 보고 자랑을 하고 물리 올림피아드를 보고 과학고를 중2때 간 친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간지가 나니까.

별 생각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그냥 컴퓨터가 하고싶었다.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노잉>을 보고 암호학자가 되겠다고 어머니께 속삭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철딱서니가 없긴 하다. 어느날, 어머니가 신문지 한칸을 잘라오시더니, “진수야, 이런 고등학교가 있대. 너가 컴퓨터를 좋아하니, 이런 곳을 가보는건 어떠니?”라고 말씀하셨다.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였다. 흔히 말하는 실업계 고등학교였다. 당시엔 특성화고로 이름이 바뀌면서 정부에서 밀어주기 시작했다. 중학교 수준의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아이였어서, “오 좋아보인다. 나 저기 갈래. 고마워 엄마.”하고 중3 내신 성적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학원을 다니겠다며 조르면서 공부하고 뭐 나름 선방하고서 디미고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에 면접을 합격하고 진학했다.

어이쿠. 디미고에 가니 나는 그냥 해커로 치면 스크립트 키드 정도 되는, 걍 아무것도 모르는 컴퓨터 유저쯤이었다. 스타크래프트 피쉬 서버니 브레인 서버니 하는 멋진 걸 하는 친구들이 같은 반 친구였으니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방어기제였을까. 별안간 난 컴퓨터 같은거 안하고 수능 잘봐서 좋은 대학 가겠다고 했다.

참고로 난 고등학교 입학하고서 거의 2년은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첫 등교날, 짝다리를 집고 섰다는 이유로 무서운 선생님한테 무섭게 혼난 이후로는 도통 적응이 안됐다. 맨날 집에만 가고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들, 사감쌤들, 친구들이랑 잘만 어울리면서 잔류까지 해가면서 주말에도 학교에서 노는데, 나는 매주 집에 가면서 그때까지도 부모님을 좀 힘들게 했다. 이게 좀 첫 breaking point였으려나. 나중에 알았지만 난 그때 불안장애가 있었고, 그 증상으로 점심에 교실에서 일어나 급식실에 밥을 먹으러 가는 것 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뭘 했느냐, 그냥 미친듯이 문제집을 풀었을 뿐이다. 재수없는 소리가 아니라, 그땐 그게 나한테 진짜 약이었다.

말했듯이, 거의 2년을 그렇게 보냈다. 중간 중간 학교를 때려치우겠다며 난리 생난리를 친적도 많았지만,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붙잡으시며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봐라, 곧 괜찮아질거다 위로하셨다. 그렇게 2학년이 끝날때쯤이 되니 정말 괜찮아졌다.

고3이 되면서 대충 세어보니 그때까지 푼 문제집이 족히 3-40권은 되었다. 병적인 행동의 결과였다. 근데, 그게 내 수능 모의고사 성적엔 좋았다. 고2 9월 모의고사때 첫 전교 1등을 하면서 담임 선생님이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거꾸로 자랑을 해주셨으니. 첫 효도일지도 모르겠다.

고3땐 그냥 하던대로 매일 정해둔 스케쥴대로 수능 교시에 맞게 모의고사 문제집을 하나씩 풀면서 매일을 보냈다. 고2때까지 정말 악마와 같은 고생을 당시엔 했기 때문에 나한텐 그냥 노는 수준이었다. 재미있었다. 친구들이랑 노닥거리기도 하고 몰래 학교 뒷산을 타고 시내에 나가서 치킨을 먹고 와서 선생님한테 걸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날 수능날이 되었고, 의외로 긴장하지 않은채로 시험을 마치고, 가채점을 하고 나선 4개를 틀린 것을 확인했다. 수능 마친날 기념이라며 아버지께서 빕스를 사주셨다. 그 자리에서 “오 아빠 나 4개 틀렸어.”했더니 아무 반응이 없으셨다. 맛있게 먹고 푹 자라며, 이제 인생에서의 첫 큰 허들 넘은 것 축하한다는 말씀만 하셨다. 아마 거짓말인줄 아셨던 것 같다.

난 서울대 기계항공우주공학과에 가고싶었다. 고2가 되면서 과학 동아리를 했는데 그때 담당 선생님께서 일본의 SF 애니메이션과 미국의 공상과학 영화를 보여주시면서 흥미를 키워주셨다. 그때가 아마 나로호가 막 날아갔을때였나. 암튼 뭐 계기가 있어서 그땐 또 로켓에 꽂혔다. 그때도 제대로 이해도 못하는 로켓공학 전공서적을 사서 들고다니면서 깝치고 다녔다. 동아리에서 뭐 미국의 JPL에선 이런걸 한다더라, 로켓공학에서 다루는 발사체의 탈출 속도는 어쩌며 공식은 이렇다더라 깨작깨작 발표하는 수준? 그 당시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연 글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서 학교 행정실을 통해 그 상을 받을때는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놀랍게도 로켓공학과는 큰 관련이 없었지만. 그냥 뭐랄까,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다.

그땐 수시와 정시가 있었다. 지금도 있나. 수시를 지원해서 붙으면 정시로는 대학을 지원해서 못갔다. 정말 왜일까. 그때도 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연세대가 파란색이어서 좋았고, 수시는 어차피 내신이 안좋아서 못갈 것 같으니 과학 동아리 선생님이 추천한 연세대 물리학과에 넣어라도 보자며 지원했다. 11월말이었나, 누나방에서 노트북으로 수시 전형 결과를 보는데, 맙소사 합격이었다. 엄마 몸을 붙잡고 엄마 나 합격이야! 라고 외쳤으나 어머니는 아마 거짓말인줄 아셨던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영혼없는 말투로 소리를 질렀으니.

연세대? 아주 자랑스러웠다. 파란색과 독수리. 간지 그 자체. (그땐 몰랐지,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수시탓에 서울대 못간것이고 뭐고 신나게 1학년을 즐겼다. 공부도 거의 안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응원전이니 연고전이니 아주 끝내주게 놀았다. 그러다가 안건데, 물리학과엔 천재가 많았다. 실제로 많았다. 물리학과는 적분학과로 불릴만큼 적분이 많은데, 적분엔 어느 정도 직관이 필요하다. 어떤 친구는 적분을 기계처럼 해냈는데, “너 이게 적분하면 이게 될지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어보면 “그냥 이거일거 같았어.”라고 대답했다. 이때의 방어기제가 날 다시 방향을 바꾸게 했다.

대학교 2학년때부터 겉돌기 시작했다. 하라는 물리 공부는 안하고 컴공이랑 전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디미고 짬밥이 있으니 컴퓨터 좀 한다고 꺼드럭거렸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지만. 암튼, 허세 좀 부려가면서 컴공이랑 전전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그때 한창 핫하던 안드로이드 앱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입학때 들었다, 연앱이라는 학교 커뮤니티 앱이 있었는데 무슨 사건이 있어서 사라졌다고. 애브리타임이라는 시간표 짜는 앱이 있었는데 그땐 기능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대로 연앱이라고 앱 이름을 짓고 한 2주동안 밤새워가면서 책보고 개발해서 배포를 했다. 애브리타임에 열심히 홍보를 하니, 2천명 남짓 사용자가 모였고 그주 생산성 카테고리에서 앱 설치 1위를 했었다. 여기저기 온갖 자랑을 하고 다녔었지.

그러다 자신감이 붙어서 공대 동아리에 지원했다. 사발통문이라는 유서 깊은 동아리였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후속으로 계속 쓰겠습니다. 글쓰는 재주가 없어서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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